이십 대 시절, 나는 중학생들을 앉혀 놓고 중간고사 공부를 시켰다
시험 범위는 한국 현대 문학사, 아이들은 지쳐 있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한때 아름답다고 여긴 시구는 의미 없는 문장으로 느껴졌다
그때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네가 시험에서 백 점 맞는 거지"
"그런 거 말고요. 진짜 되고 싶은 거요. 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할머니? 왜?"
"시간을 건너뛰고 싶거든요, 그럼 시험공부 안 해도 되고
취직하려 아등바등하지도 않을 거잖아요.
드라마보며 뜨개질하고 쉴 수 있고요"
아이의 말에는 그 모든 걸 피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정도로 힘들다니,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임용 고시에서 몇 차례 고배를 마시고
보습 학원에 취직한 참이었다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공부했지만 계속 낙방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겐 시험 잘 봐야 한다고,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고 몰아붙였다
십여 년이 흘러 비로소 내 삶을 꾸려 갈 용기가 생긴 지금,
아이에게 말해 주고 싶다.
할머니의 시간은 혹독한 폭풍우를 견뎠기에 고요히 빛나는 거라고,
늙는 것과 나이 드는 건 분명 다르다고,
할머니가 되는 건 쓰라린 시간을 나이테에 새기며 견디다
그 자리에서 다른 이를 품는 그늘을 갖는 거라고.
"네 앞이 별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다면 윤동주 시인의
시를 기억 하면 좋겠구나. 시인은 처음엔 없었던 마지막 구절을
추가했다지.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청춘이 시리게 푸르렀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지.
그때 우린 꽤 멋진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
- 좋은 생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