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이 지는 건 한 순간,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고, 누구에게나 허물은 있다.
나는 깨끗하다 속옷을 다 벗어보일 자 몇이란 말인가?
털면 먼지 하나 안나올 이, 세상에 몇이란 말인가?
욕심이 만들어 낸 시커먼 재를 누구나 가슴 주머니에 담고 산다.
이름있는 삶이 마냥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
사람들의 관심이 마냥 축복이 될 수는 없다. 때로는 독이 되어 자신의 삶을 아프게 파고든다.
그래서 평범한 삶, 무명인으로 지는 삶이 어쩌면 편한 선택이 아닐까, 살며시 내 생각을 얹혀본다. 물론 죽어서 이름이라도 빛나기를 바라는 자 많다고 생각한다. 화가는 그림을 남기고 싶고, 작가는 책을 남기고 싶고 누군가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작품이 그 사람 자체일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을 아는 것일뿐, 그 사람의 인생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것들은 화려하게 걸쳐진 겉옷에 불과하고 진짜 속옷은 작품이나 업적인 아닌 사사로운 개인의 삶이다. 작품이 훌륭하다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헤밍웨이는 왜 자살을 했겠는가?
누구나 죽을테지만 살면서 죽음을 품고 살지는 않는다. 죽음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삶,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는가?
죽음이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이미 가버린 길, 남아있는 유족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입술 고이 닫고 지는 삶에 고개숙여 작별 인사함이 어떻겠는가?
누구나 '잘 살다 갑니다.' 건네고 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인생사 맘대로 되지 않으니 우리 모두 쓴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화려한 길을 가려거든 무대에 오를 때보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를 준비하라고 해주던 이의 말이 와닿는다.
인생, 피는 순간보다 지는 순간을 위해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라고 내게 끊임없이 주문한다.
무명인으로 사는 삶이 화려한 삶보다 낫다고 여길 때쯤이면 화려함에 속은 자신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한번 물들면 빠지기 어려운 얼룩처럼,
그래도 어쩌겠는가?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우리 모두 사는 과정이 다 얻으려는 욕망으로 나아가는 것을.
인생,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