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만을 내세우는 사람의 약점
- 상대가 반론하기 전에 결점을 인정해 버린다.
무엇이든 이론적으로만 사물을 결정하는 타입은 어떤 집단에도 몇 명인가는
있기 마련이다. 이론가인 것을 자랑하며 무엇이든 이론만으로 무장해서 공격해 온다.
진정한 이론가는 결코 이렇지 않지만 자칭이론가, 또는 남들로부터 그렇다고
생각되는 이론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이기고 싶어한다.
본래 무엇이든 이론을 갖다 붙일 수는 있다. 그런 사람과의 논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이론가로 주위에서 인정받고 있을수록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강박관념과
같은 심리적 벽이 형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 싸움에서 지면 그 순간부터 이론가로서의 평가는 사라지고,
자기존재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에 절대로 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대가 구축하고 있는 심리적 벽을 역 이용해서 반론을 봉쇄하면
이쪽의 페이스로 말을 진행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런 타입의 상사가 있다고 가정하고,
기획서를 제출하면 상사는 한참 바라본다.
그 기획서의 내용에 사실은 자신이 없는 부분이 두 개 정도 있다고 하자.
전부 읽어보고 그 점을 지적할 것 같다고 생각되면,
바로 “과다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반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이라고
선수를 친다.
물론 왜 과다한 비용이 드는가, 어디가 종래의 방식과 다르다는 등에 관해서의 응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론을 꺼내면 상대는 이론가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반론을 펼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획서는 죽은 것과 같다.
그 때 “반론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이라고 상대의 예리한 두뇌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경의를 표하는 것을 전제로 자신의 약점을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수를 쓰면 상대는 자신의 프라이드가 충족 되어지는 것과 동시에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사람에게 또 한 번 약점을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즉 약점에 대해서도 관대해지고 이론으로 공격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론가 행세를 하고 있는 상대를 납득시키는
이런 설득술은 ‘열매를 취하고 꽃은 버리는’ 설득술이라 고도 말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