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다 같을 때는 그게 차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어릴 적 동무들은 다같이 가난했고, 다 같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서로의 집은 다 열려 있었다.
어느 집에서 밥 한끼를 먹고 왔다고 피해가 된다거나 부담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정이 넘쳤다.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다.
가진 게 없었지만 풍부했다.
김치 하나에 막걸리 한 사발로 웃음이 담장을 넘었고,
밀가루반죽에 김치 쏭쏭 썰어 그냥 부침개를 해도 집집마다 나누어주려 다니기 바뻤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게 행복이라고 털털 웃으시던 아저씨의 말에
전부가 맞장구치시곤 했다.
그게 최고인줄 알았던 순간들이 그저 햇살처럼 당연하게 비추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구 집에서 자고 와도 돼?라는 말에 나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는 것이 어느새 상당한 민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릴 적 동네는 어느 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개인줄도 알만큼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네 마음에 욕심이 가득차 버렸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아주 예전 이야기일뿐이다.
옆집, 윗집 소음소리에도 민감하게들 받아들이며 산다.
어릴 때는 동네가 다 이웃사촌이었다.
일상의 소소함이 즐거움이 참 별거없이 그저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우리네 삶은 훨씬 풍부해지고 나아졌는데 마음은 점점 썰렁하게 비어간다.
장독대에 김치로 다 채워져 있어도 부자가 된 듯 행복해 하던 어머니의
미소가 그립다.
향수에 젖는 날이 많아졌다.
작은 일에도 수다스러웠던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장단같았다라는
어머니의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