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적부터 빨간 돼지통에게 동전을 넣으며 저축의 개념을 담아왔다.
10원, 50원, 100원, 500원, 1000원, 5000원, 1,0000원을 넣으면서 배불러가는 돼지의 모습을, 묵직한 그 맛을 아는 자는 안다. 금액과 상관없이 채워져가는 행복의 가치를 말이다.
나의 아이에게도 빨간 돼지저금통을 사주었고, 애는 돼지를 의인화하며 마치 인형보다 더 품으며 '배고팠지?' 하면서 동전을 넣어 주었고, 동전을 넣어주고는 '배부르지!'하면서 돼지저금통을 애기 키우듯 키워나갔다. 쪼그만 게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저축의 개념으로 사주었는데 아이는 행복의 가치를 다른 면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 아이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돈의 가치도, 그저 돼지저금통이 배고프다는 것에만 완전히 꽃혀서 모든 이에게 돈을 달라고 떼쓰기 시작했다. 할머니, 고모, 삼촌 보이는대로 그 모습이 이뻐서 동전을 만들어서라도 딸아이에게 안겼다.
그 덕분에 돼지저금통은 금새 꽉 찼다. 그 어린 손으로 돼지를 들기도 힘들만큼 말이다.
돼지가 살쪄서 큰일이다. 어쩌나? 했더니, 돼지저금통을 데리고 운동시켜야 된다고 놀이터에 가자는 것이다. 아! 이게 아닌데....피곤하게 됐다.
돼지 배가 너무 불러서 은행에 갖다주어야 한다고 말해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애가 잠든 사이에 돼지배를 아주 살짝 잘라서 동전을 빼냈다.
그리고 다음날, 딸아이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돼지가 다쳤다는 것이다. 아주 살짝만 배를 갈라서 동전을 빼내고 나름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걸 발견하고 만다.
새로 사준다고 해도 안되고,울기만 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말 진땀을 뺐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낸 것은 대일밴드였다. 상처난 돼지배에 '호~'해주고 대일밴드를 붙여주자 아이의 눈물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꼬마 돼지저금통을 하나 더 샀다. 나중에 돼지배가 차면 또 데리고 나가서 운동시키자 할까봐 작은 거로 샀다.
지금 딸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난 기억없는데 내가 그랬어? 귀엽네."그런다.
그리고 그 딸아이는 돼지띠이다. 황금돼지해는 자신의 해라고 말한다.
지금은 우리 이렇게 추억하며 웃지만, 그 날 난 우는 딸아이로 인해 멘붕이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