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는데 상처는 과거에 머물러 흐르지 않는다
공유하기
닫기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살았다. 비록 제주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는 내게 고향이다.
4.3사건에 대해 알게 된 건 성인이 되어서다. 교과서나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육지가 아닌 이 섬에 전쟁의 아픔이 있으리라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았다.
20살 무렵, 제주 시인의 싯구절로 4.3사건을 알게 되었지만 너무 추상적이었다.
그러다 사무실 두 부장님의 싸움으로 4.3사건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았지만 그게 다다.
즉 전혀 와닿지 않는 역사요,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무지한 것도 있었지만 당시의 가해자들(군 지휘관, 경찰)들이 권력 주변에 붙어있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두려움에 치를 떤 피해자들의 두려움이 큰 벽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순이 삼촌]을 통해 무고한 시민들이 당한 참상은 글로 옮겨적기 힘들었다.
[순이 삼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그러고 보니 어려서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를 향해 '삼촌이라고 부르곤 했다. 제주의 풍습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친척이 아니라도 이모나 아짐보다는 삼촌이라 불렀다.
어려서 삼촌이 남자에게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너무 흔한 일이라. 커서 삼촌이라 불리는 것이 남자에게 칭해주는 호칭이라 정의됐지만.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밭에 몰아넣고 총을 쏴 죽였다. 시체 무더기 속에 파묻혀 기절했던 순이 삼촌만 유일하게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딸,아들 다 죽고 살아온 자, 그것도 뱃속에 태아가 있던 터,
사람들을 무더기로 죽인 그 밭은 순이 삼촌의 밭이었다. 다음에 그 밭에는 감자 풍년이었다.
송장거름으로 감자는 씨알도 굵고 풍작이었으나 사람들은 그 감자를 사먹지 않았다,
그후 30년을 순이 삼촌은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30년전에 죽은 거나 다름없었을 터, 그녀에게 살아있음은 무엇일까?
그녀는 끝내 자신의 밭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그녀가 그 밭에 가 자살을 한 이유를 굳이 말해야 할까. 그 당시의 생존자들, 살아서 그 끔찍한 상처들을 잊을 수 있을까?
죽은 영혼들의 넋도 달래지 못하고 그 사건의 진실도 밝히지 못하고
[순이 삼촌]은 내가 알던 그 어떤 지식보다 4.3사건에 대해 아주 가깝게 와 닿았고 상처는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제주도 사투리로 적힌 걸 읽으니 제주도가 그립다. 제주도 사투리때문인지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동네 어른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읽기를 정말 잘했다. 아, 진작에 읽을 걸 후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