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전부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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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음식)
나는 돈을 빌려본 적은 있지만,
빌려준 적은 없는 것 같다.
돈이 없으니 빌려줄 수도 없는 셈이다.
사무실에 있으면 가끔 찾아오는 분이 있다.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홍도나 여수로 가야하는 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둥......
그러면
"빌려드리는 것 아닙니다. 제가 가진 게 이것 밖에 없습니다."
하고 지갑 속 돈을 다 드린다.
지갑에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도 있었다.
놀랍게도 쌀이라도 달라고 한다.
아내에게 말해서 쌀을 좀 퍼준 적도 있다.
사무실에 좀 재워달라고 해서 재워주었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 현금출납기에 든 돈을 싹 긁어 가시면서,
"56,570원 빌려갑니다. 꼭 갚겠습니다"라고 한 사람도 있다.
당연히 나는 받을 생각도 없고, 그 사람도 돌려줄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한 번은 은행에 가서 내 통장잔고의 모든 돈이었던 5만원을 찾아서 준 적도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 돈으로 소주를 사 드실 것이고,
어떤 사람은 국밥을 한그릇 사 드실 것이다.
난 항상 감사한다.
다시 볼 사람도 아니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찾아왔을 때,
그냥 줄 수 있는 돈이 내 수중에 조금이라도 있다는 게.
이제는 사무실을 이전해서 구석진 곳으로 왔지만,
대로변의 넓은 평수를 차지하고 지난 6년간,
카페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단 한 명도 섭섭하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기쁘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이는 나와 11시간을 이야기했다.
어떤 때는 새벽4시까지 이야기했다.
이런 어리석은 남편을 끝까지 참고 사는 아내는
류마티스에 화병증세도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만 할 수 있을까?
아내가 포기했으니,
이제는 조금만 내가 바뀌어도 행복해하지 않을까?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렵다는 아내를 뒤로 하고,
매일 출근해서 돈 안 되는 카페지기로 날밤을 새우던 그 날들을 지나지만,
딸 셋이랑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평생에 한 번도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고 채권자가 된 적이 없다.
이제 새 사무실을 이전했으니,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줄 때는 차용증을 꼭 쓰는 습관을 길러봐야지 ^^